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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건강

강박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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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대학 입학시험에 전념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생인 K군은 요즘 공부가 되지 않아 매우 불안하다. 성적이 우수한 K군은 매우 꼼꼼한 성격이어서 시험에 나올 중요한 내용을 노트에 정리해 두었다가 시험 직전에 최종확인을 하곤 하였다. 정리노트에는 다양한 색깔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매우 중요한 것을 빨간색,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파란색,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을 주황색, 다음은 초록색 등등으로... 시험이 다가오면 3일 전에는 초록색 밑줄이 그어진 내용을 공부하고, 2일 전에는 주황색, 1일 전에는 파란색, 시험당일에는 빨간색으로 밑줄 그어진 내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곤 하였다. 그런데 한 달 전 중간고사가 있던 날, 정리노트를 깜박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매우 당황하고 불안하였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 시험을 보게 되어 중간고사 성적이 10등 정도 떨어졌고, K군은 자신의 부주의함을 크게 자책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K군은 매일 아침 자신이 학교에서 공부할 책과 노트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집을 떠나기 전에 중요한 책이나 노트가 빠져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어 서너 차례씩 가방을 확인해야 했고 점차로 확인하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자기 전에 여러 번 확인하고 때로는 자다가도 일어나 가방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수차례 확인을 해야 했고 심지어는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와 몇 번씩 확인하였으며 학교에 가는 중에도 계속 무언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불안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빠뜨린 책이나 노트는 없었으며 자신의 확인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확인행동을 자꾸만 반복하게 되었다. 

안경을 끼고 있던 K군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더러워진 안경을 닦다가 안경알에 흠집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요즘 눈이 침침하고 약간 통증이 느껴오던 차에 K군은 흠집 있는 안경을 쓰고 공부한 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로 자꾸만 안경에 신경이 쓰였으며 흠집난 안경을 쓰면 눈에 왜곡된 상이 맺혀 망막에도 흠집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였다. 그래서 안경알을 새로 바꾸었으나 이번에는 안경알에 자주 먼지가 끼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안경알을 닦아야만 했고, 안경에 신경이 쓰여 수업시간에 교사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며 공부할 때도 주의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로 공부의 능률이 떨어지게 되었고 성적도 점차로 저하되었다. 입학시험이 다가오면서, K군은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으나 가방을 확인하고 안경을 닦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강박장애를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1. 주요증상과 임상적 특징

강박장애는, K군의 경우처럼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불안장애이다. 강박장애의 주된 증상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으로 의식에 침투하는 고통스러운 생각, 충동 또는 심상을 말한다. 이러한 강박사고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는데, 흔한 예로는 음란하거나 근친상간적인 생각, 공격적이거나 신성 모독적인 생각, 오염에 대한 생각(악수할 때 손에 병균이 묻지 않았을까?), 반복적 의심(자물쇠를 제대로 잠갔나?), 물건을 순서대로 정리하려는 충동이다. 이러한 생각이 부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잘 통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의식에 떠올라 고통스럽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를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되는데, 흔히 강박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강박행동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을 말한다. 이러한 강박행동은 씻기, 청소하기, 정돈하기, 확인하기와 같이 외현적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숫자세기, 기도하기,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와 같이 내현적 활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강박행동이 지나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심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이러한 강박적 사고와 행동으로 인해서 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생각과 행동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현실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강박장애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강박적 사고나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크게 3가지의 하위유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첫째는 순수한 강박사고형으로서 외현적인 강박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내면적인 강박사고만 지니는 경우이다. 예컨대, 원치 않은 성적인 생각, 난폭하거나 공격적인 충동, 도덕관념과 배치되는 비윤리적인 심상 등과 같은 불편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무기력하게 괴로워하거나 마치 내면적 논쟁을 하듯이 대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내현적 강박행동형으로서 강박적 사고와 더불어 겉으로 관찰되지 않는 내면적 강박행동만을 지니는 경우이다. 숫자를 세거나 기도를 하거나 어떤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우는 내현적 강박행동을 하며 이는 불편한 강박사고를 없애거나 감소시키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강박사고와 더불어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는 강박행동을 나타내는 외현적 강박행동형이 있다.이러한 외현적인 강박적 행동은 매우 다양한데, 더러운 것(예: 병균, 벌레, 오염물질)에 오염되었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를 제거하려는 반복적 행동을 나타내는 청결행동, 실수(예: 중요한 서류에 잘못 기재함, 자물쇠를 잠그지 않음)나 사고(예: 담뱃불을 끄지 않아 화재가 남, 자동차 브레이크가 풀려 사람을 다치게 함)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이를 피하기 위한 확인행동(checking), 무의미하거나 미신적인 동일한 행동(예: 옷을 수십 번씩 입었다 벗었다 반복함, 성경책을 계속 몇 쪽씩 앞으로 뒤로 넘김)을 의식처럼 나타내는 반복행동(repeating), 주변의 사물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하거나 대칭과 균형을 중시하여 수시로 주변을 재정리하는 정돈행동(arranging), 낡고 무가치한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수집행동(hoarding),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부적인 것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게 되어 어떤 일을 처리하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지연행동(slowness)이 있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은 흔히 우울증, 다른 불안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섭식장애, 뚜렛 장애 등을 함께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2. 원인과 치료

 인간은 누구나 전혀 예상치 못한이상한 생각이 의식에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매우 음란하거나 잔인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며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잠시 우리의 의식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처럼 우연하게 떠오르는 불쾌한 생각이나 충동에 대해서 잘못 대처하게 되면 강박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인지적 입장을 지닌 심리학자인 Salkovskis는 강밥ㄱ장애가 발생하는 세부적인 과정을 분석하여 침투적 사고와 자동적 사고로 구분하고 있다. 침투적 사고는 우연히 의식 속에 떠오르는 원치 않는 불쾌한 생각을 의미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침투적 사고는 일종의 내면적 자극으로서 그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자동적 사고를 유발한다. 즉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는 침투적 사고에 대한 사고를 말하는데,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매우 빨리 지나가며 잘 의식되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 사고라고 부른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우연히 떠오른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자동적 사고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즉 이들은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과도하게 중요성, 책임감, 통제필요성을 부여한다. 예컨대, 가족과 성관계를 맺는 근친상간적인 생각이 우연히 떠올랐을 때, "이런 생각은 중요하므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비윤리적 생각을 한 것은 나의 책임이다", "이런 생각이 절대로 떠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자동적 사고를 하게 된다. 따라서 이처럼 불안을 유발하는 침투적 사고를 억제하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침투적 사고가 자꾸 의식에 떠오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Wegner와 그의 동료는 어떤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우연히 떠오른 불쾌한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이러한 사고를 억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에 의해서 오히려 침투적 사고는 더 빈번하게 떠오르게 된다. 따라서 더욱 강하게 사고억제를 시도하고 그 결과 더 자주 침투적 사고가 의식에 떠오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병적인 강박사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드리 핌투적 사고에 대해서 중요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사고통제를 시도하게 되는 데에는 사고ㅡ행위 융합이라는 인지적 특성이 개입된다. 사고ㅡ행위 융합은 생각한 것이 곧 행위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뜻한다. 이러한 인지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어 사고억제를 시도하게 된다. 이 경우 음란한 생각이 들 때마다 우연히 숫자를 3씩 더해 가는 속셈을 하면서 음란한 생각이 감소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음란한 생각이 들 때마다 숫자를 세는 특이한 강박행동을 나타내게 된다. 이처럼 우연한 경험에 근거하여 강박사고의 빈도와는 무관한 미신적 행동을 통해 강박사고를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강박장애 환자들이 매우 다양하고 기묘한 강박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강박행동은 불안을 감소시키는 부적 상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자꾸 반복하게 된다.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특정한 방어기제를 통해 무의식적 갈등으로 인한 불안에 대처하려 할 때 강박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드는 강박 증상을 항문기에 억압된 욕구나 충동이 재활성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충동이 의식에 떠오르게 되면 불안을 경험하게 되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주로 4가지의 방어기제인 격리, 대치, 반동 형성, 취소가 사용된다. 격리(isolation)는 사고와 그에 수반되는 감정을 단절시키는 방어기제로서 난폭한 강박사고를 지닌 사람은 이러한 생각에 집착함으로써 이에 수반되는 분노감정을 경험하지 않게 한다. 대치(displacement)는 본래의 욕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위장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키는데, 자물쇠 잠그는 일에 집착함으로써 부부갈등이라는 위협을 간과할 수 있게 한다.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은 자신의 실제 욕구에 반대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으로서 난폭한 강박사고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공격적 충동과 달리 평소에는 매우 친절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강박장애 환자가 이에 해당한다. 취소(undoing)는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떤 행위로 무효화하려는 시도로서 죄의식이나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 신성모독적인 강박사고를 지닌 사람이 마치 성수세례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듯이 물 속에 머리를 담그는 강박행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현재 강박장애에 대한 약물치료로는 Clomipramine이나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약물은 많은 강박장애 환자의 증상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으나 그 치료효과가 제한적이고 약물을 중단할 경우 증상이 재발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강박장애에 대한 심리적 치료방법으로는 노출 및 반응방지법(ERP: 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학습이론에 근거한 행동치료적 기법으로서 강박장애 환자를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극(더러운 물질)이나 사고(손에 병균이 묻었다는 생각)에 노출시키되 강박행동(손 씻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시행을 통해서 두려워하는 자극과 사고를 강박행동 없이 견디어 내는 둔감화 효과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강박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결과(병에 전염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최근에는 강박장애의 인지적 이론에 근거한 인지적 치료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즉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과도한 책임감과 통제의무감을 느끼게 만드는 자동적 사고를 확인하고 변화시킴으로써 강박적 사고와 행동을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침투적 사고는 그 내용이 아무리 비윤리적이고 위협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통제하려 들지 않으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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