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6개월째로 접어드는 20대 후반의 회사원인 B씨는 퇴근길에 쇼핑센터나 백화점에 들러 아내 대신 시장을 보곤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는 일이지만 회사일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매주 2~3번 시장을 보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B씨의 부인은 사람이 많고 넓은 쇼핑센터나 백화점에 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B씨의 부인은 신혼 초에 혼자 백화점에 들러 시장을 보던 중,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뱃속이 울렁거리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상한 행동(예 큰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는 행동)을 할 것 같은 극심한 불안감을 경험하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남편의 충고에 따라, 남편과 함께 같은 백화점에 가 보았으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포감이 밀려와 즉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사람이 많은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는 것을 기피하고 있으며 요즘은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싫어 하고 있다. B씨는 다른 신혼부부처럼 아내와 함께 쇼핑도 하며 외식도 하고 싶으나, 아내의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불만감이 쌓여가고 있다. 게다가 아내의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면 평생 동안 자신이 시장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B씨는 마음이 답답하다.
광장공포증은, B씨의 아내처럼 특정한 장소나 상황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 장애는 갑작스럽게 강렬한 불안이 엄습하는 공황발작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공황발작은 어지러움, 흉부통증, 질식할 것 같음, 토할 것 같음, 죽거나 미칠 것 같음 등과 같은 신체적, 심리적 증상을 수반한다. 광장공포증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탈출이 어렵거나 곤란한 장소(예: 엘리베이터, 다리 위, 비행기, 전철, 버스, 기차 속에 있는 것)나 공황발작과 같이 갑작스런 곤경에 빠질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장소나 상황(예: 집 밖에서 혼자 있는 것, 백화점, 영화관, 운동장 등과 같이 많은 사람 속에 있는 것,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지닌 여러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광장공포증은 한두 가지 특정한 상황에만 공포를 지니는 특정공포증(특히 상황형)이나 자신이 당황해하는 것과 관련된 사회적 상황에만 국한하여 공포를 나타내는 사회공포증과는 구별된다.
Goldstein과 chambless(1978)는 광장공포증을 유발하는 심리적 기제를 분석하면서 공포에 대한 공포이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광장공포증을 유발하는 두 가지 심리적 요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 요인은 공포에 대한 공포이다. 이는 공포의 결과로 유발되는 당혹감과 혼란감, 통제상실, 졸도, 심장발작, 정신이상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이 실제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한 상황에서 경험할지도 모르는 공포감으로 인한 여러 가지 당혹스런 경험을 두려워한다. 즉 이들은 사실상 특정한 장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장소에서 경험하게 될 공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에 대한 공포는 (1) 공포와 관련된 신체감각에 대한 두려움과 (2)공포의 결과에 대한 부적응적인 사고(예: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할 것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광장공포증을 유발하는 다른 요인은 불안을 유발한 선행 사건을 잘못 해석하는 경향성이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의 갈등으로 어떤 사람과 심하게 다투고 난 후 넓은 길거리에 혼자 서 있을 때 불안을 경험한 사람이 불안의 원인을 대인관계의 갈등 때문이라기보다는 넓은 길거리라는 상황에 잘못 돌림으로써 넓은 길거리를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통제감이 부족하거나 대인관계의 갈등을 비롯한 심리적 갈등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광장공포증이 유발되기 쉽다. 광장공포증 환자는 두려워하는 장소에서 흔히 공황발작을 경험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광장공포증을 독립된 장애로 보기보다는 공황장애의 한 하위유형으로 간주하고 있다. 광장공포증은 공황장애와 특정공포증의 임상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원인적 요인도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