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인 K씨는 왠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자주 느끼며 여러 가지 일로 걱정이 많다. 예를 들면, 남편이 직장에서 실직하지 않을까, 시집식구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도둑이나 강도가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비롯하여 사소하게는 자신이 만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가전제품이 고장나면 어떡하나, 물건을 비싸게 사면 어떡하나 등등 일상생활 전반에 대해서 크고 작은 걱정이 많다. K씨는 이러한 걱정이 때로는 불필요하고 과도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에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초조하고 안절부절하며 긴장상태에 있게 되어, 특별히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저녁시간이 되면 몹시 피곤하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는 K씨의 경우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만성적 불안과 과도한 걱정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활동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함으로써 지속적인 불안과 긴장을 경험한다.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개인은 몹시 고통스러우며 현실적인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범불안장애라고 하며 '일반화된 불안장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불안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매사에 잔걱정을 많이 한다.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사소한 일에도 잘 놀라고 긴장한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생활 전반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에 부동불안(free floating anxiety)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늘 과민하고 긴장된 상태에 있으며 짜증과 화를 잘 내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지속적인 긴장으로 인한 근육통과 더불어 만성적 피로감, 두통, 수면장애, 소화불량,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의 증상을 함께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범불안장애를 지닌 사람은 대부분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며 깜짝깜짝 잘 놀라는 과장된 반응을 흔히 보인다. 아울러 이들은 불필요한 걱정에 집착하기 때문에 우유부단하고 꾸물거리는 지연행동을 나타내어 현실적인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DSM-4에 제시되어 있는 범불안장애의 진단기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범불안장애에 대한 DSM-4
A. 다양한 사건이나 활동(예: 일이나 학업성적)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된다.
B. 걱정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C. 다음 6개의 증상 중 3개 이상이 나타난다.(아동에게는 1개 이상이면 됨).
(1) 안절부절 못함 또는 긴장되거나 가장자리에 선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
(2) 쉽게 피로해짐
(3) 주의집중의 곤란이나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
(4) 화를 잘 냄
(5) 근육의 긴장
(6) 수면장애(잠에 들거나 지속하기가 어려움)
D. 불안과 걱정 또는 신체적 초점이 축 1에 속하는 다른 장애에서 나타나는 불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 공황장애의 경우 공황발작에 대한 불안, 사회공포증의 경우 대중 앞에서 당황하는 것에 대한 불안, 강박증의 경우 오염에 대한 불안,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경우 체중 증가에 대한 불안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
E. 불안, 걱정 또는 신체적 증상이 심각한 고통을 유발하거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영역의 활동에 현저한 장해를 초래한다.
F. 범불안장애는 물질(예: 남용하는 약물)이나 일반적인 의학적 상태(예: 부신피질호르몬 과다증)의 직접적인 생리적 효과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기분장애, 정신증적 장애 또는 전반적 발달장애의 기간 중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범불안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지적 특성을 나타낸다.
첫째, 주변의 생활환경 속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위험에 예민하다. 이들은 위험한 사고와 위협적인 사건에 관한 정보에 관심이 많으며 일상 생활 속에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단서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불안한 사람들은 잠재적인 위험이 실제로 위험한 사건으로 발생활 확률을 과도하게 높이 평가한다. 예컨대, 자신이나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 집에 화재가 날 확률, 질병에 걸릴 확률 등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높에 평가한다. 셋째, 위험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지나치게 치명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예컨대, 교통사고가 날 경우에는 경미한 접촉사고나 신체적 상해보다는 정면충돌이나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위험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즉 위험한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은 그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미래의 위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범불안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하여 '만일...하면 어떡하지?'라는 내면적 질문을 계속하여 던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연쇄적인 사고과정 속에서 점점 더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게 되는데, 이를 파국화라고 한다.
치료
범불안장애는 매우 흔한 문제이지만 다른 장애에 비해 그 치료방법이 잘 개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여러 가지 치료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 하나는 약물치료로서 가장 흔히 처방되는 약물은 Benzodiazepine계열의 약물이다. 이러한 약물은 자극에 대한 과민성을 저하시키고 사고와 행동을 감소시키는 진정 효과를 나타내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일부 환자에게는 진정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으며 다량으로 복용하면 인지적, 행동적 기능을 저하시켜 직업적 활동, 공부, 운전 등과 같은 일상적 활동을 곤란하게 만든다. 또한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는 내성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신체적, 심리적 의존이 생겨 약물을 중단하기 어려우며 복용을 중단하면 여러 가지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범불안장애에 대한 인지행동적 치료방법이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지행동치료자는 환자에게 걱정과 관련된 인지적 요인들을 이해시킨 후 걱정이라는 내면적인 사고과정을 자각하여 관찰하도록 격려한다. 즉 자신이 언제 어떤 내용의 걱정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지를 관찰하여 '걱정사고기록지'에 기록하게 한다. 흔히 경험하는 주된 내용의 걱정을 치료시간에 떠올리게 하여 이러한 걱정이 과연 현실적인 것이며 효율적인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걱정의 비현실성과 비효율성을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걱정에 대한 긍정적 신념 역시 수정하게 한다. 아울러 걱정이 떠오를 경우에 이를 조절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시킨다. 예컨대, 걱정의 사고내용에 반대되는 대응적 생각을 되뇌이는 방법, 하루 중 '걱정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다른 시간에는 일상적 일에 집중하는 방법, 불안을 유발하는 걱정의 사고나 심상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걱정에 대한 인내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걱정의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 고통을 유발하는 사고나 감정을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이를 수용하도록 하는 방법 등을 활용한다. 이 밖에도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 (예: 복식호흡, 긴장이완, 심상법, 명상 등)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지행동치료가 범불안장애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범불안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을 병행하는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