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연구원인 C씨는 요즘 매우 우울하다. 이 세상에는 너무 부당한 일이 많으며 자신은 이런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부적격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4남매 중 둘째 아들인 C씨는 어린 시절 똑똑하고 당돌한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사람으로서 장남인 C씨의 형을 총애하고 동생들이 형에게 순종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C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러한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자주 대들었으며 아버지가 매질을 하여도 절대 잘못했다고 빈 적이 없는 매우 고집 센 소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 했으나, 담임교사가 부잣집 아이들에게 부당한 혜택을 준다고 불평을 하며 따지는 등 당돌한 행동을 하여 늘 교사로부터 미움을 사곤 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교사를 비롯하여 학급동료들과 다투는 일이 많았다. 상대방이 한 말 중에서 C군을 무시하는 듯한 사소한 단서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꼬치꼬치 따지고 들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이 많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C씨는 매우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이성관계에 관심이 없었으며 공부에만 몰두하였다. 학문적 토론에서는 매우 유능하였으나 대인관계에서 지나치게 까다롭고 타산적이어서 친한 친구가 없었다. C씨는 택시운전사, 음식점 주인, 상점판매원 등이 자신에게 부당한 요금을 청구한다고 다투는 일이 많았고 때로는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직장 상사나 동료들의 부당함을 제기하며 다투는 일이 많아 6개월 만에 퇴사하였으며 미와 비슷한 문제로 인하여 현재 직장을 네 번이나 바꾸었다. 현재 근무하는 연구소에서도 동료연구원들이 자신의 연구내용을 도용하거나 표절할 수 있다는 의심 때문에 논문 파일을 USB에 따로 가지고 다니곤 한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발표한 연구내용에 대해서 비판을 한 상급 연구원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그가 발표할 때 신랄하게 약점을 들추어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었다. 이와 같은 일로 인해서 C씨는 연구소 내에 여러 명의 적을 만들어 놓았으며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요즘 C씨는 자신이 해고당할 것에 대비하여 연구소의 비리사실을 모아놓고 있으며 법적 소송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으나,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1. 주요증상과 임상적 특징
편집성 성격장애는 타인에 대한 강한 불신과 의심을 지니고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내어 사회적 부적응을 나타내는 성격특성을 말한다. 이러한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지속적인 갈등과 불화를 나타내게 되는데, 앞에서 소개한 C씨의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편집성 성격장애에 대한 DSM-4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동기를 악의에 찬 것으로 해석하는 등 광범위한 불신과 의심이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어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타나며 다음 7가지 특성 중 4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1) 충분한 근거 없이 타인이 자신을 착취하고 해를 주거나 속인다고 의심한다.
2)친구나 동료의 성실성이나 신용에 대한 부당한 의심을 한다.
3)정보가 자신에게 악의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부당한 공포 때문에 터놓고 얘기하기를 꺼린다.
4)타인의 말이나 사건 속에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위협하는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한다.
5)원한을 오랫동안 풀지 않는다. 예컨대, 자신에 대한 모욕, 손상, 경멸을 용서하지 않는다.
6)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인격이나 명성이 공격당했다고 인식하고 즉시 화를 내거나 반격한다.
7)이유 없이 배우자나 성적 상대자의 정절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심한다.
2. 원인과 치료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편집성 성격장애의 원인을 망상장애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 신뢰의 결여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편집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가학적인 양육을 받는 경향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가학적 태도를 내면화한다. 따라서 타인의 공격, 경멸, 비판에 예민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인의 공격과 속임을 경계하게 된다. 아울러 이들은 자신의 적대감과 비판적 태도를 자각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은 믿지 못할 악한 존재라는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입장에서는 이들의 독특한 신념과 사고과정에 초점을 두어 설명한다. 1) 사람들은 악의적이고 기만적이다, 2)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3) 긴장하고 경계해야만 나에게 피해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신념으로 인해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타인의 행동 속에서 비난, 기만, 적의를 예상하고 그러한 부정적 측면을 선택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적대적 신념, 타인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선택적 지각, 타인의 적대적 행동의 유발, 타인의 적대성에 대한 신념의 확인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편집성 성격성향이 지속되는 것이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로 임상가를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문제로 치료를 원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성격장애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성격적 문제이므로 수정과 변화가 쉽지 않다. 심리치료에서는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신뢰로운 관계 형성이 매우 어렵지만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불신적이고 적대적인 경향으로 인해 치료적 관계형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내담자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방어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솔직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는 치료자의 언행에서 적대적인 요소를 포착하여 치료자에게 의심과 분노와 적대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치료자는 이러한 내담자의 감정을 잘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견고한 신뢰관계의 바탕 위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고 이에 대해 치료자가 공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내담자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주요한 치료 목표는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