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고시촌에서 10년째 공부를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K씨는 요즘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취업하여 결혼하라는 부모의 성화가 극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보기에 K씨는 고시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 10년째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별로 미안한 마음을 지니는 것 같지도 않으며 대책 없이 고시촌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3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여자나 결혼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고시촌 주인의 이야기로는, 어울리는 사람도 없이 식사만 하면 혼자 방에 들어가 생활하는 조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K씨는 늘 혼자 지내는 편이며 또한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왠지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여 주로 혼자서 지내는 편이다. K씨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었다. K씨의 부모는 모두 현재 대학교수로서 외국에서 유학 중일 때 K씨를 낳게 되었다. 유학공부를 하고 있던 부모는 도저히 K군을 양육할 수 없어서 한국에 있는 친가에 보내어 주로 친할머니가 양육하였다. K씨의 할머니는 매우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 자신에게 떠맡긴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K씨가 만 3세 되던 해에 부모는 유학에서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 해에 여동생이 생겨 네 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다. 부모는 K씨에게 잘 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왠지 K씨는 부모에게 거리감을 느끼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K씨는 말썽부리지 않는 착하고 순한 아이였으며 부모 역시 바쁜 생활로 자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다. 낮에는 가정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모 모두 대학으로 출강하는 생활이 몇 년간 반복되었다. 학교에 진학한 K씨는 항상 중상위권 성적을 보였으며 조용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친한 친구 없이 혼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남들이 다하는 미팅 한 번 하지 않았다. 졸업한 후 K군은 한 중소 기업에 취업했으나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빙빙 돌았다.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아 빗질하지 않은 이상한 머리를 한 채 출근을 하곤 하였으며 다른 사람에 전혀 무관심하여 회사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결국 회사에서 정리해고 된 이후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하여, 부모는 경제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으나 이렇게 10년째 대책 없이 고시촌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1. 주요증상과 임상적 특징
분열성 성격장애는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에 관심이 없고 감정표현이 부족하여 사회적 적응에 현저한 어려움을 나타내는 성격장애이다. 이러한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K씨의 경우처럼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으며 매우 단조롭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어 있고 대인관계 상황에서 감정표현이 제한되어 있는 특성이 성인기 초기부터 생활 전반에 나타나며, 다음의 특성 중 4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1)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포함하여,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2) 거의 항상 혼자서 하는 활동을 선택한다.
3) 다른 사람과 성 경험을 갖는 일에 거의 흥미가 없다.
4)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활동에서만 즐거움을 얻는다.
5) 직계가족 이외에는 가까운 친구나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없다
6) 타인의 칭찬이나 비평에 무관심해 보인다.
7) 정서적인 냉담, 무관심 또는 둔마된 감정반응을 보인다.
분열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주로 혼자서 지내는 경향이 있다. 가족을 제외한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없으며 이성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여 독신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칭찬이나 비판에도 무관심한 듯이 감정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감정이 메말라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강한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짧은 기간 동안 정신증적 증상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망상장애나 정신분열증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흔하며 분열형, 편집성, 회피성 성격장애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2. 원인과 치료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분열성 성격장애를 편집성 성격장애와 마찬가지로 기본적 신뢰의 결여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이런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어려서 부모로부터 충분히 수용되지 못하거나 거부당하는 경험을 지니는 경향이 있는데, 조용하고 수줍으며 순종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경쟁적인 게임과 친밀한 또래 관계를 피하기 때문에 또래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여겨지며 놀림의 대상이 된다. 흔히 내면적인 공상세계 속에서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해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에 결함이 있으며 이러한 결함은 유아기에 부모로부터 양육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부적절감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외현적 상태와 내현적 상태를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겉으로는 대인관계에 무관심하고 정서가 메마른 듯이 보이지만 내현적으로는 아주 예민하고 경계적이며 고집스러우며 창조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괴리는 자기표상이 통합되지 못한 채 쪼개져 있는 '분열성'을 반영한다. 그 결과, 이들은 혼란된 정체감을 지니며 매우 갈등적인 사고, 감정, 욕구로 인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이러한 정체감의 혼란이 타인과의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인지적 입장에서는 부정적 자기개념과 대인관계 회피에 관한 사고가 분열성 성격장애의 특성을 초래한다고 본다. 분열성 성격장애자들은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문제만 일어난다", "주위에 사람들만 없다면 인생은 별로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 "나는 사회 속의 무리에 끼어 들기에는 부적절한 사람이다"라는 사고를 내면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들의 주된 신념은 타인과 그들의 반응이 중요하지 않으며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데, 적대적 형태가 아니라 "상관하지 말라, 내버려 두라"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침묵이나 소극적 태도를 수용하면서 서서히 관계형성에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내담자의 사소한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고 공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내담자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치료자와의 관계형성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분열성 성격장애의 치료목표는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1) 내담자가 사회적 상황에서 철수하려는 경향을 줄이고, 2)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도우며 3) 정서적 경험의 폭과 깊이를 서서히 확대 심화시키고 4)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