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인 P군의 부모는 요즘 아들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와 친척집에 머물고 있다. P군이 부모를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P군은 어려서 부산하고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였으나 똘똘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연예인인 어머니는 늘 바쁘고 불규칙한 생활을 했으며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심하게 다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P군은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친구들과 싸움을 해서 부모들이 학교에 불려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에 부모는 심하게 야단을 치곤 했으나 청소년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 P군은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무단결석을 자주 했으며 불량학생 서클의 주요 멤버로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이 자주 있어 부모는 학교에 불려 다니며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사죄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부모는 P군을 때리고 달래고 온갖 방법을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으며 반복되는 무단결석과 폭력으로 인해 결국에는 2학년 말에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퇴학을 당한 후, P군은 부모에게 자주 용돈을 요구했으며 부모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집에 있는 전자제품이나 귀중품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가 팔아 쓰곤 했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유흥비로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자신에게 유산으로 줄 돈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으며 요즘은 부모를 위협하며 돈을 빼앗아가다시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폭행사건으로 두번이나 구속되어 부모가 피해자에게 보상비를 주고 합의하여 P군을 풀려나게 하곤 했다. 참다못한 부모는 친척들과 상의하게 되었고, P군을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강제로 입원시켰다. P군은 퇴원을 요구했으나 부모에 의해 묵살되었다. 이후 두 달 동안 모범적인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P군의 부모는 기뻐했다. 그러나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 강제입원시켰다며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면서 죽이겠다고 했다. 살기를 띠고 덤벼드는 P군에게 부모는 싹싹 빌었으며 P군은 대신 일주일 내에 돈 1억원을 자신에게 주면 살려주겠다고 하여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요즘 P군의 부모는 불안 속에 떨고 있다.
1. 주요증상과 임상적 특징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사회의 규범이나 법을 지키지 않으며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어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절도, 사기, 폭력과 같은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흔하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행동양식이 생활전반에 나타나며 이러한 특성이 15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울러 다음의 특성 중 3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1) 법에서 정한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지 않으며 구속당할 행동을 반복한다.
2) 개인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한 반복적인 거짓말, 가명 사용 또는 타인을 속이는 사기행동
3) 충동성 또는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4) 빈번한 육체적 싸움이나 폭력에서 드러나는 호전성과 공격성
5)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는 무모성
6) 꾸준하게 직업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무책임성
7)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학대하거나 절도행위를 하고도 무관심하거나 합리화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자책의 결여
2. 원인과 치료
반사회성 성격장애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관여함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범죄행위의 일치성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55%이며 이란성 쌍둥이는 13%였다는 보고가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반사회적 성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정상 가정으로 입양된 246명의 입양아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여성보다 남성이 환경적 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서 반사회적 성격을 발달시킬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의 영향을 받으며 특히 여성의 반사회성 성격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반사회성 성격이 어머니와 유아 간의 관계형성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기본적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여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반사회성 성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감정을 느끼는 공감능력이 발달되지 못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초자아가 발달하지 못해 도덕성이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지적 입장에 따르면,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들은 독특한 신념체계를 지니고 있다. 즉 "우리는 정글에 살고 있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힘과 주먹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다", "들키지 않는 한 거짓말을 하거나 속여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은 약한 자들이며 당해도 되는 존재들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도 정당화될 수 있다"와 같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들은 법원의 명령이나 중요한 사람에 의해 강제로 의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료에 대한 진정한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는 권위적 인물에 대해 저항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치료자는 중립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법적인 면책이나 현실적 이득을 위해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듯한 태도를 위장하여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심층적 심리치료 보다는 구체적인 부적응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행동치료적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일단 형성되면 근본적인 치료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문제아동이나 비행청소년에 대한 조기개입과 부모교육을 통해 예방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 현대 이상심리학 권석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