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학생인 P군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고 힘들ㄷ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너무 불안하게 느껴져서 가능하면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있다. 어떤 강의를 수강했다가도 교수가 발표를 시키거나 조별활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 과목을 취소한다. 학과의 지도교수를 만나야 하는 일이 있지만 왠지 지도교수가 무섭게 느껴지고 야단을 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찾아가지 못한다. 학교 캠퍼스에서도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 앞을 지나가는 일이 두려워 먼 길을 돌아다닌다. 버스나 전철을 탈 때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무언가 흉을 볼 것 같아 긴장하게 된다. P군은 소개팅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만 처음 만난 낯선 이성과 만나서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하고 어색해 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여 대학 3학년이 되도록 소개팅 한번 하지 못했다. 현재 P군은 고등학교 동창이나 익숙한 학과 친구 한두 명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
P군은 어려서부터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수줍음이 많았다. P군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성적이 매우 우수했으나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반장이나 회장같은 학교 임원으로 선발되는 일을 극히 싫어하여 심지어 임원을 선출하는 날은 일부러 결석을 하곤 했다.
1.주요증상과 임상적 특징
회피성 성격장애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사회적 상황을 회피함으로써 적응에 어려움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회피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억제, 부적절감,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과민성이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타나며, 다음 중 4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1) 비난, 꾸중 또는 거절이 두려워서 대인관계가 요구되는 직업활동을 회피한다.
2) 호감을 주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사람과의 만남을 피한다.
3) 창피와 조롱을 당할까 두려워서 대인관계를 친밀한 관계에만 제한한다.
4) 사회적 상황에서 비난당하거나 거부당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
5) 부적절감 때문에 새로운 대인관계 상황에서는 위축된다.
6) 자신을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개인적인 매력이 없으며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7)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까봐 두려워서 개인적 위험이 따르는 일이나 새로운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회피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를 가장 두려워한다. 이들은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라는 부정적 자아상을 지니는 반면, 타인을 비판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라고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한 행위의 적절성을 늘 의심하고 남들의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겉으로는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경향이 있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사회공포증과 매우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 특히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사회공포증의 일반화형은 회피성 성격장애와 동일한 장애라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사회공포증에 비해, 회피성 성격장애는 회피행동이 어린 시절부터 일찍 시작되고 분명한 유발사건을 찾기 어려우며 비교적 일정한 경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수줍음이 많고 낯선 사람과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며 고립되어 있었던 경우가 많다. 아동기의 수줍음은 성장하면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으나, 회피성 성격장애로 진행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춘기나 청년기 초기에 수줍음이 증가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피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기에 들어서면서 증상이 약화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2. 원인과 치료
회피성 성격장애는 기질적으로 수줍고 억제적인 경향이 있으며 위험에 대한 과도한 생리적 민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미래의 위험이나 처벌 같은 부정적 결과가 예상될 때 생리적으로 교감신경계의 흥분이 유발된다. 교감신경계의 역치가 낮아서 사소한 위협적 자극에도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정신역동적 입장에서는 회피성 성격장애의 주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본다. 이러한 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자아상과 관련되는데, 수치심 이라는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숨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대인관계나 자신이 노출되는 상황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은 생후 8개월경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과 함께 처음으로 나타나며 이후의 성장과정에서 관계경험들이 축적되어 병리적 수치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인지적 입장에서는 아동기의 경험에서 유래하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신념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회피성 성격장애 역시 가장 주된 치료는 개인 심리치료로 알려져 있다. 회피성 성격장애자는 치료자의 거부를 두려워하여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나타낸다. 아울러 이들은 치료자가 자신을 좋게 생각하는지 나쁘게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치료자를 편안하게 대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공개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상당한 치료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정신역동적 치료에서는 수치심의 기저에 깔려 있는 심리적 원인을 살펴보고 과거 발달과정에서 경험한 일들과의 관련성을 탐색한다. 그러나 성장기에 가족으로부터 받은 수치스러운 경험이나 성장과정에서의 외상적 경험을 탐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내적 소망과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저항할 수 있다. 치료자는 변함없는 지지와 수용적인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내담자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자신의 불안을 조절하고 회피행동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들이 불안과 긴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긴장이완이나 복속호흡 훈련 등을 실시하고 사회적 상황에 대한 점진적 노출을 시도한다. 둘째, 이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인관계 기술을 훈련시킨다. 점진적 노출, 긴장이완훈련, 사회적 기술 훈련을 각각 실시하여 효과적임을 입증하였으며 이러한 훈련이 함께 실시되면 치료효과가 더욱 증가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아울러 회피성 성격장애자들이 나타내는 역기능적 신념과 인지적 왜곡을 수정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타인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예상하는 인지적 왜곡을 자각시키고 구체적인 대인관계 경험의 분석과 행동실험을 통해 좀더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닐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나아가서 타인의 부정적 평가가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에 대해서 검토함으로써 타인의 거부나 비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근본적으로는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신념에 도전하여 균형있는 자기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회피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와 같은 약물이 보조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